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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회당에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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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 일어서라.’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좋으냐?’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한탄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들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 하니라.”(막 3:1-6)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당을 많이 이용하셨다. 유대인들이 사는 곳마다 있는 회당에는 쉽게 들어갈 수 있었고, 회당장의 허락을 얻어 자유롭게 말씀하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감시하기 위하여 회당을 찾기 시작하자 예수님과 그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안식일에도 바리새인들이 앞자리에 앉아 예수님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날 그들이 예수님의 동태를 더 주의 깊게 살핀 것은 모인 사람들 중에 손 마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께서 그를 고쳐주시면 안식일을 범했다는 구실로 그를 고발하려는 것이 그들의 의도였던 것이다.


형식과 외형을 중시하며 전통에 매달리는 바리새인들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 9:11)는 예수님과는 여러 면에서 대립했는데, 안식일에 관한 문제도 그 중 하나였다. 그날 회당에 들어오시기 전에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을 지나다 이삭을 잘라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어째서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느냐?”는 질책성 질문을 했었다. 


그때 예수님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을 먹은 사실을 상기 시키면서(삼상 21:1-6)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는 성전보다 크시며 “안식일의 주인”이라 말씀하신다. 안식일에 제사장이 성전에서 제사준비를 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안식일이라도 옳고 선한 일을 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하시는 일들을 율법을 어기는 행위로 간주하려는 생각을 버렸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강퍅해진 마음으로 회당에 들어와 예수님의 행동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 외의 문서에 의하면 회당에 앉아있던 손 마른 사람은 돌을 다듬던 석공이었다고 한다. 마태와 마가는 그의 “한쪽 손”이 말렸다고 기록했지만 의사인 누가는 “오른 손이 마른 사람”이라 명시하고 있다. 석공이 오른 손을 못 쓰게 되면 인간의 가치를 상실한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무용한 인간이 된 그는 유용한 인간의 대열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에게 손을 고쳐달라 간청하지 않고 잠잠한 것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심으로 바리새인들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을 염려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선한 생각과는 달리 그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그를 고쳐주시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만 그들이 예수님을 고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안식일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는 삶과 죽음의 문제처럼 중요했다. 실루키드 제국의 유대교 핍박에 항거하여 제사장 유다 맥가버가 주전 160년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실루키드 왕 안티오쿠스는 반란군을 안식일에 공격하였다. 광야 동굴에 은신해 있던 맥가버의 군사들은 그들의 공격에 맞서 싸우지 못하고 죽어갔다. 안식일에 무기를 들고 싸우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 공화국의 폼페이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성 밖에 토산을 쌓았다. 고대전투에서 견고한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전략이었다. 이에 반해 성을 수비하는 편에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토산을 쌓지 못하도록 하곤 했다. 그러나 폼페이 장군이 안식일에 토산을 쌓아 올리기 시작하자 성안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식일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회당의 특별석을 차지하고 있는 목적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신 예수님과 그들 사이에 흐르던 침묵이 바리새인들에 의해 깨어진다. 그들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라 물어온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반응은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신 후 “사람이 양보다 더 귀함으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마 12:11-12)고 답변하신 것이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이와는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바리새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읽으시고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나와 서게 하신 후 주위를 둘러보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신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도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양을 꺼낼 것인지를 물으신 것과 같은 취지의 것이었다. 그리고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진 동물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은 허용되고 있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침묵하는 그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그들의 완악한 마음으로 인해 탄식하며 노하셨다. 손 마른 사람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심도 없이 오직 예수님을 책잡을 기회만을 노리는 그들의 악한 마음에 의로운 분노와 슬픔을 느끼신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명하신다. 그를 고쳐주신다는 것은 바리새인들의 주문에 응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아시면서도 말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꼭 그날 그의 손을 고치셔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놔두면 생명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하루 더 지난다고 상태가 악화되는 병도 아니었기에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날 고쳐주시는 것이 모든 면에서 원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네들의 완악하고 그릇된 생각과 행동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인간은 결코 안식일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당장 생명을 잃을 위험은 없을 지라도 필요 없이 고통을 받아서도 안 되며, 율법을 지키고 예배를 위한 형식과 절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자비와 사랑임을 그들에게 선포하기를 예수님은 원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서게 하시고 “네 손을 내밀라.”하신 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보낸 공개 도전장이기도 했다. 그에겐 생명인 오른 손의 기능을 상실한 석공에게는 잃었던 생명을 되찾아 주겠다는 엄숙한 선언이었고, 손 마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마비된 손을 내미는 불가능한 일을 단행하자 그의 손은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되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며, 예수님이 보실 때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일이 행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것은 결코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그를 고치기 위해 하신 일은 그를 일어나게 하여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신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신 행위로부터 안식일에 병을 고치면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려놓고 그를 주시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한 범법자로 몰아 죽일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표적수사”를 하기로 결정하면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결정된 표적을 정당화 내지는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정치적인 입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이 상반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들은 하나로 뭉친 것이다. 참으로 슬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류구원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해 단합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오른 손의 기능을 상실한 순간부터 석공은 캄캄한 암흑 속에서 몸부림 쳐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 앞에 나와 “네 손을 내밀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름으로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 빛의 세상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도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 정결한 몸과 마음을 지닐 수 있다. 아무리 연약하고 미약한 사람도 예수님에게 손을 내밀면 누구보다 굳세고 강하게 변화하여 놀라운 힘과 용기를 발휘하며 주께 충성하는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다. 예수님 안에서 쓸모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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